아무리 좋은 스토리도 규격을 벗어나면 읽히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법을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3막 구조와 대사를 짰더라도, 이를 담아내는 '그릇'인 포맷(Format)이 엉망이면 프로의 세계에서는 가차 없이 외면받습니다. 한글이나 워드 프로그램을 켜고 소설처럼 글을 길게 이어 쓰거나, 인터넷 게시판의 소수점 일기처럼 제멋대로 줄바꿈을 해놓은 대본을 보면 기획 피디나 심사위원들은 첫 페이지에서 서류를 덮어버립니다. 규격을 지키지 않은 대본은 현장 스태프들과 소통할 준비가 안 된 아마추어의 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독학으로 첫 단편 시나리오를 썼을 때, 지문과 대사의 여백을 어떻게 띄워야 하는지 몰라 일반 수필처럼 빽빽하게 채워 제출했다가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 읽기 힘들다"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포맷은 단순히 보기 좋게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1페이지당 약 1분의 러닝타임'이라는 영상 업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인 규격입니다. 오늘은 한글 프로그램 설정부터 줄바꿈까지, 공모전과 현장에서 통용되는 표준 시나리오 포맷 규칙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대본의 시작: 신 헤더(Scene Header) 작성법

시나리오는 장면(Scene)의 조합입니다. 새로운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가장 상단에 적는 줄을 '신 헤더'라고 부르며, 여기에는 촬영팀과 연출부가 인지해야 할 3가지 정보(장면 번호, 장소, 시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 올바른 표기 예시: S# 24. 고시원 복도 (낮) 또는 씬 24. 고시원 복도 / 낮

장면 번호(S#) 뒤에는 반드시 점을 찍거나 띄어쓰기를 하고,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한 뒤 괄호나 슬래시를 이용해 낮(Day)과 밤(Night)을 구분해 주어야 합니다. 조명 감독과 촬영 감독은 이 헤더 한 줄만 보고도 어떤 장비를 준비해야 할지 직관적으로 판단합니다. 헤더 줄은 위아래로 한 줄씩 공백을 두어 시각적으로 명확히 분리해 주는 것이 표준입니다.

2. 지문(Action)과 대사(Dialogue)의 여백 분리 규칙

국내 표준 시나리오 포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문과 대사의 '시각적 영역 분리'입니다. 지문은 화면에 보이고 들리는 행동과 상황을 적는 영역이고, 대사는 인물이 말하는 영역입니다.

  • 지문의 배치 지문은 원고의 왼쪽 끝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끝까지 넓게 활용합니다. 다만 한 줄의 지문이 너무 길어지면 20편에서 다룬 가독성이 무너지므로 가급적 문장을 짧게 끊어 쳐야 합니다. 문단의 첫 시작에서 스페이스바를 눌러 들여쓰기를 하지 않고, 왼쪽 벽에 딱 붙여서 작성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 대사와 인물 이름의 배치 인물의 이름은 줄의 중간쯤(보통 7~8칸 들여쓰기)에 배치하고, 그 바로 아래 줄에 대사를 작성합니다. 대사 역시 인물 이름과 비슷하게 들여쓰기된 정렬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지문은 넓게, 대사는 가운데로 모이게 배치해야 대본을 빠르게 넘기며 읽을 때 지문과 대사가 한눈에 구별되어 가독성이 극대화됩니다.

3. 한글(HWP) 프로그램 표준 문서 설정 값

공모전에 대본을 제출할 때 양식 지침에 자주 등장하는 한글 프로그램의 가장 안전하고 표준적인 설정 값을 공유합니다. 특별한 양식 지정이 없다면 이 기준을 따르면 됩니다.

  • 글자 모양: 바탕체 또는 명조체 (고딕체 계열은 장시간 읽을 때 피로감을 주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글자 크기: 10포인트 ~ 11포인트

  • 줄 간격: 160% ~ 180% (여백이 충분해야 여백에 현장 메모를 할 수 있습니다.)

  • 용지 여백: 위쪽/아래쪽 15mm, 머리말/꼬리말 15mm, 왼쪽/오른쪽 20mm ~ 30mm

이 설정을 맞추고 대본을 작성하면, 신기하게도 프로들이 쓰는 전문 시나리오 프로그램(Celtx나 Final Draft)으로 뽑아낸 듯한 정갈한 레이아웃이 완성됩니다.

초보 창작자가 범하는 실수: 괄호 지문((Parenthetical))의 남용

대사를 쓸 때 인물의 감정 상태나 행동을 지시하기 위해 인물 이름 옆이나 대사 사이에 괄호를 열고 (화가 나서), (우울하게), (비웃으며)와 같은 심리 상태를 구구절절 적어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괄호 지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초보 작가들이 가장 흔하게 범하는 악습 중 하나입니다. 감정은 대사의 내용과 앞뒤 맥락, 그리고 배우의 연기 영역에 속합니다. 작가가 괄호 안에 감정을 일일이 지정해 두면 배우와 감독의 창의적 해석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대본이 매우 유치해 보입니다. 괄호 지문은 (전화 벨소리를 끊으며)(동시에)처럼 대사의 타이밍이나 물리적인 행동 오디오를 제어해야 하는 극적인 순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감정은 괄호 속 형용사가 아닌, 대사 자체의 서브텍스트로 전달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핵심 요약

  • 시나리오 포맷은 영상 업계의 표준적인 소통 약속이자 가독성을 확보하여 본문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프로 작가의 기본 격식입니다.

  • 신 헤더는 장면 번호, 장소, 시간을 명확히 표기해야 하며, 지문은 넓게 쓰고 인물 이름과 대사는 가운데로 들여쓰기하여 시각적으로 분리해야 합니다.

  • 괄호 지문을 남용해 인물의 감정을 일일이 간섭하는 실수를 피하고, 표준 문서 설정 값을 준수하여 1페이지당 1분의 호흡을 구현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기나긴 독창적 서사 집필의 고독함을 넘어, 다른 창작자들과 건강하게 소통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지치지 않는 스토리텔러로 생존하는 '진짜 마지막 이야기: 지치지 않는 스토리텔러로 살아남기 위한 연대와 소통의 힘'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시나리오나 글을 작성하실 때 어떤 워드 프로그램(한글, 워드, 노션 등)을 주로 사용하시나요? 혹은 포맷을 맞출 때 가장 헷갈렸던 규칙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